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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숫자열이 없는 키보드로 세벌식 치기

DS1TPT 2021. 3. 22. 21:54

 저는 손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키보드로 타자를 할 때면 얼마 가지 않아서 오른쪽 손목이 저려오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인체공학 키보드를 찾고 있었는데 영 제 조건에 맞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키보드를 책상에 올려놓는게 아닌 키보드 트레이에 놓고 사용하기 때문에 MS의 스컬프트 키보드나 Kinesis Advantage, Maltron L90같은 키보드들은 도저히 올려놓을 방법이 보이질 않더군요. 거기다 저는 키보드에 돈을 쏟아부을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을 해서 Keyboardio의 Atreus를 구매했습니다.

키보드 사진

 로마자 부분은 엄지 부분과 높이차를 두기 위해 원래 가지고 있던 SA 프로파일 키캡을 장착했습니다. 순정 키캡은 XDA 프로파일입니다.

 손목이 거의 꺾이지 않고, 손가락이 검지를 제외하면 위아래로만 움직이게 되어있어 일반적인 키보드보다 훨씬 편하게 타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키보드는 저에게 있어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숫자열이 없습니다. 두벌식 자판 이용자는 B키를 오른손으로 누를 수 없어 좌절하게 되지만 공세벌식 이용자는 숫자열이 없는 점이 상당히 걸렸습니다. 커스텀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납땜하는데 한 세월이 걸리고, 더 비쌉니다. 그래서 숫자열이 없는 걸 감수하고 구매를 하자마자 날개셋 입력기로 배열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공병우 세벌식 3-90 배열
새 키보드에 맞게 수정한 배열

 이 키보드는 힘이 약한 새끼손가락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엄지가 스페이스 바만 누르는 것이 아닌 다른 Modifier 키도 누를 수 있습니다. 순정 키보드 배열은 엔터키가 배열도의 한/영 키 위치에 있는데, 우선 키보드 수준에서는 백스페이스, 쉬프트 등을 엄지로 누르도록 배치하고, 엔터키와 백슬래시는 양손 검지 또는엄지로 누르는 위치에 배치했습니다. 윈도우 키는 저는 사용을 거의 안하는 편이라 Fun키(기능키로 레이어 1을 활성화합니다)를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다음 진짜 한글 배열입니다. 윗글쇠와 아랫글쇠의 배열은 기존 공세벌식과 거의 같습니다. 다만 차이점이 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숫자열이 사라지며 누를 수 없게 된 글쇠를 재배열한 것입니다. 그리고 ㅆ 받침을 엄지로 누르도록 했습니다. 자판 배열에서 왼쪽 아래는 기본 아랫글쇠, 왼쪽 위는 윗글쇠, 오른쪽 아래는 맨 아랫줄과 빨간색 ㅗ를 제외하면 치환타법으로 치는 글쇠입니다. 이 키보드는 따옴표 키가 맨 아랫줄에 있습니다. 공세벌식의 배열을 보면 따옴표 키에 초성 ㅌ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수정을 해야 하지만, 넣을 공간이 없습니다. 이런 글쇠들은 모두 치환 타법으로 입력합니다.

 초성 부분부터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초성은 ㅌ, ㅋ 글쇠가 없는 점을 빼면 완전히 같습니다. ㅋ은 ㄱ과 ㅇ을 조합하고, ㅌ은 ㄷ과 ㅁ을 조합하여 타자하도록 했습니다. 중지와 검지로 촤락하고 치게 되어있어 손가락을 멀리 뻗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애초에 뻗을 공간이 없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타자하게 했습니다.

 중성 부분은 이중모음을 조합할 때 쓰는 ㅜ가 없습니다. 따라서 ㅗ로 모두 해결해야 합니다. ㅗ는 모음 쉬프트 키로 기능합니다. 중성 글쇠의 빨간 모음들은 ㅗ와 조합했을때 입력됩니다. 예를 들어, ㅑ를 입력하려면 ㅗ를 누른 다음 ㅡ를 누르면 ㅑ가 입력됩니다. ㅛ와 ㅠ는 ㅗ 또는 ㅜ를 연타해서 칠 수도 있습니다. 즉, ㅗ+ㅜ, ㅜ+ㅜ 모두 ㅠ를 입력합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부담이 걸릴 것 같은 경우 ㅠ는 ㅜ를 연타합니다. ㅖ는 왼손 검지와 중지로 촤락하고 입력합니다.

 종성 부분은 ㅆ가 종성 쉬프트를 담당합니다. ㅂ을 입력하고 싶다면 ㅆ+ㄴ 조합으로 입력합니다. ㄼ, ㄵ 는 먼저 각각 할당된 위치를 누른 다음 그 위 숫자열에 있는 키를 누르는 방법으로 타자하던 받침이기 때문에 윗부분에 배열했습니다. ```ㅎ은 ㅂ의 왼쪽에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이 그림과 같이 배열했습니다. 남아있는 ㅈ은 그냥 ㅂ아래에 배열했습니다.

 이 배열은 빈도분포 분석같은 것 없이 만든 배열이라 효율성은 공세벌식에 비해 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성의 치환타법을 할 때 비록 엄지로 종성 쉬프트를 입력하기는 하지만 왼손의 부담이 좀 늘어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공세벌식과 최대한 큰 차이가 안나는 자판을 구현하려고 이런 삽질을 한 것이지요. 약어 기능이 있다는 점은 공세벌식과 크게 다른 부분입니다. 다만 약어 역시 분석따위는 없이 그냥 제가 많이 쓰는 문구들을 넣어놓은 것으로 완전히 제 편의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어짜피 저 혼자 사용할게 뻔한 배열이니 다른 사람의 편의를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기는 합니다.

 이렇게 공세벌식과 눈에 띄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컨셉트에 집착하는 이유는 노트북이나 다른 컴퓨터를 사용할 때 거의 대부분의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세벌식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벌식으로 옮겨가면 다른 컴퓨터를 쓸 때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그런 것이죠. 세모이같은 자판을 사용하면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

 날개셋 설정 파일은 올려놓겠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구경해보셔도 좋습니다만... 일반 키보드에선 ㅆ키가 ~ 위치에 있는 것 때문에 실사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정말 딱 한 가지 키보드만을 위한 특수한(?) 배열이 되겠습니다.

세벌식 Atreus44.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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